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사흘을 보낸 직장인이 판결 일주일 뒤 지역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렸습니다. 일곱 명 가운데 다섯은 처음부터 유죄였고 둘은 끝까지 버텼다는 이야기, 판사가 평의실에 들어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적었습니다. 댓글이 수십 개 달렸고 글은 다른 카페로 퍼졌습니다. 신기한 경험을 나눴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글에는 법이 명시적으로 막아 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평의의 무엇을 비밀로 정했고, 어디서부터 형사처벌로 이어지는지 따져 봅니다.
평의실 안의 대화는 왜 밖으로 나오면 안 되나
평의는 배심원끼리 유무죄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듣고 다수결로 정하고, 유죄로 정해지면 판사와 함께 형량을 토의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법 제47조는 배심원이 평의, 평결, 토의 과정에서 알게 된 판사 및 배심원 각자의 의견과 그 분포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정합니다. 제12조 제3항도 배심원에게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는 의무를 따로 지웠습니다.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의견이 바깥에 알려질 수 있다면 배심원은 평의실에서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고,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지목될 수도 있습니다.
평의의 자유는 비밀에서 나옵니다.
평의의 비밀
배심원이 평의, 평결, 양형 토의 과정에서 알게 된 판사와 배심원 각자의 의견, 그리고 그 의견이 몇 대 몇으로 나뉘었는지를 외부에 알리지 않을 의무를 말합니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어느 조문이 처벌을 정하나
제47조는 금지만 적고 있습니다. 처벌은 벌칙 장에 있습니다.
제58조 제1항은 배심원이나 예비배심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제2항은 배심원이나 예비배심원이었던 사람이 누설한 때에도 같다고 적었습니다. 판결이 선고되어 임무가 끝난 뒤에 쓴 글도 이 조항의 범위에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제47조가 의견과 그 분포를 비밀로 지정해 두었으므로, 이를 외부에 알린 행위는 제58조가 말하는 직무상 비밀의 누설로 평가될 여지가 큽니다. 두 조문이 짝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후기 글 가운데 어디까지가 문제인가
후기 전부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에 담긴 문장마다 따로 보아야 합니다.
| 글에 담긴 내용 | 어떻게 보아야 하나 |
|---|---|
| 배심원으로 뽑혀 사흘간 재판에 참여했다는 사실 | 본인의 경험이고, 본인 정보는 스스로 공개 여부를 정할 수 있음 |
| 법정에서 재판장이 알린 평결 결과 | 공개된 법정에서 고지된 내용이라 평의실 안의 개별 의견과는 성격이 다름 |
| 일곱 명 중 몇 명이 유죄, 몇 명이 무죄였는지 | 제47조가 명시한 의견의 분포에 해당 |
| 누가 어떤 의견이었는지, 판사가 평의에서 한 말 | 판사와 배심원 각자의 의견으로 제47조의 정면 대상 |
| 다른 배심원의 이름이나 직장 | 제52조의 개인정보 공개 금지 대상 |
서두의 글은 표의 셋째 줄과 넷째 줄을 모두 건드렸습니다. 다섯 대 둘이라는 숫자는 의견의 분포 그 자체이고, 판사가 평의실에서 한 말은 판사 각자의 의견에 해당합니다. 재판에 참여해 보니 생각보다 진지했다는 소감과는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익명 계정이었다면 괜찮은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설은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행위입니다. 실명이든 닉네임이든 불특정 다수가 읽는 게시판에 올리는 순간 내용은 이미 바깥으로 나갑니다. 익명이라는 사정은 누가 썼는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차이일 뿐, 행위의 성질을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건이 특정되기 쉽습니다. 재판 날짜, 죄명, 평결 결과가 함께 적히면 어느 법원의 어느 사건인지 바로 좁혀지고, 그 재판의 배심원은 일곱 명 남짓입니다.
재판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뒤라면
제58조 제2항은 배심원이었던 사람에 대해 기간을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혹은 몇 년이 흘렀다고 해서 의무가 풀린다는 문언은 없습니다.
예외는 하나뿐입니다. 같은 항 단서는 연구에 필요한 협조를 한 경우를 처벌에서 뺐습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조사에 응해 답한 것과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린 것은 같은 선상에 놓이지 않습니다.
처벌할 수 있는 기간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장기 5년 미만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5년입니다. 글이 올라간 날부터 그 기간이 흐르므로, 오래된 글이라도 남아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댓글로 캐묻거나 글을 퍼 나른 사람은
제58조의 처벌 대상은 배심원, 예비배심원, 그 직에 있었던 사람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글을 읽고 다른 카페에 옮긴 사람에게 이 조항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51조 제2항은 누구든지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알아낼 목적으로 배심원이었던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고 정합니다. 몇 대 몇이었는지 더 자세히 알려 달라며 쪽지를 보내는 행동이 이 금지에 걸립니다. 다른 배심원의 이름이나 직장을 찾아 공개하는 것은 제52조가 막고 있습니다.
- 제51조와 제52조는 금지 규정이고, 벌칙 장에 직접 대응하는 처벌 조항은 두지 않았습니다.
- 다만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청탁이나 위협이 섞이면 제56조, 제57조의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미 글을 올렸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가장 먼저 할 일은 글 삭제입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퍼 간 글이 있다면 게시판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삭제했다고 이미 이루어진 누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으므로, 언제 올렸고 언제 내렸는지, 조회 수가 얼마였는지를 기록해 두십시오.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기 전이라면 형법 제52조 제1항의 자수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뒤 수사기관에 자수하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반드시 감면되는 것은 아니므로 진술 방향을 정하기 전에 상담을 받아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정리
배심원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막혀 있지 않습니다. 금지선은 평의실 안에서 들은 각자의 의견과 그 분포에 그어져 있고, 재판이 끝난 뒤에도 그 선은 그대로입니다.
몇 대 몇, 그 숫자가 선입니다.
후기를 쓰기 전에는 법정에서 공개된 내용인지, 평의실 안에서만 오간 내용인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이미 올린 글이 있다면 삭제와 기록 보존을 먼저 하고, 수사기관 연락이 오기 전에 변호사와 대응 순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46조, 제47조, 제51조, 제52조, 제56조, 제57조, 제58조 · 형법 제52조 · 형사소송법 제249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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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평결 결과가 유죄였다는 것만 써도 처벌되나요?
평결 결과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고지하는 내용이라 평의실 안의 개별 의견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다만 결과에 몇 대 몇이었는지나 누가 반대했는지를 덧붙이면 제47조가 정한 의견의 분포에 해당하므로 그 부분은 빼고 쓰셔야 합니다.
예비배심원으로만 참여했는데도 같은 의무가 있나요?
제58조는 배심원과 함께 예비배심원,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적었습니다. 예비배심원으로 지켜본 평의 관련 내용이 있다면 같은 기준으로 비밀을 지키셔야 하며, 직무상 알게 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대학 연구팀의 설문에 답한 것도 누설인가요?
제58조 제2항 단서는 배심원이었던 사람이 연구에 필요한 협조를 한 경우를 처벌에서 제외합니다. 연구 목적과 기관이 분명한 조사인지 확인하시고, 설문 안내문과 연구기관 정보를 보관해 두시면 나중에 사정을 설명하기 쉽습니다.
글을 지웠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삭제는 더 퍼지는 것을 막을 뿐 이미 이루어진 누설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게시 시각과 삭제 시각, 조회 수를 기록해 두시고, 수사기관의 연락 전이라면 자수를 할지 여부를 변호사와 상의해 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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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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