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참여재판을 방청하던 어머니는 오후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배심원 아홉 명이 모두 법정 밖으로 안내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사이 변호인과 검사는 경찰에서 작성된 서류 한 묶음을 놓고 한참을 다투었고, 배심원들은 그 다툼이 끝난 뒤에야 돌아왔습니다. 시민이 재판에 참여한다면서 왜 이런 장면이 생기는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4조가 그 답입니다. 이 조문이 판사와 배심원의 일을 어디서 가르는지 분석합니다.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어떻게 다른가
두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묻는 질문이 다릅니다. 증거능력은 이 자료를 재판에서 쓸 수 있는가를 묻고, 증명력은 쓸 수 있는 자료를 얼마나 믿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증거능력의 기준은 법률이 정합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를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했고, 제310조의2는 법이 허용한 경우 외의 전문증거를 막았습니다. 요건을 따지는 일이라 법률 해석이 중심이 됩니다.
증명력은 경험과 상식의 영역입니다. 같은 진술이라도 앞뒤가 맞는지, 다른 증거와 어긋나지 않는지는 누구나 판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44조의 문언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은 법원의 증거능력에 관한 심리에 관여할 수 없다. 한 문장짜리 조문이지만, 배심원의 권한을 정한 제12조 제1항이 사실의 인정, 법령의 적용, 형의 양정에 관한 의견이라고 적은 것과 짝을 이루어 역할의 경계를 그립니다.
왜 배심원을 그 심리에서 떼어 놓나
한 번 들은 내용은 지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증거능력을 다투려면 그 증거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위법하게 얻었다고 다투는 자백이 있다면, 그 자백이 무엇이었는지가 심리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증거에서 빠지더라도 배심원의 머릿속에는 남을 수 있습니다.
제44조는 그 위험을 구조로 막습니다. 배심원이 판단 자료로 삼는 것은 법정에서 적법하게 조사된 증거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습니다. 제41조 제2항 제3호가 배심원에게 재판절차 밖에서 사건 정보를 수집하거나 조사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도 같은 결입니다.
실무에서는 증거능력 다툼을 배심원이 없는 자리에서 다루는 방식이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다툼은 주로 언제 벌어지나
대부분은 배심원이 법정에 들어오기 전입니다.
제36조는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원하면 사건을 공판준비절차에 부쳐야 한다고 정했고, 제37조 제4항은 공판준비기일에는 배심원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9는 공판준비절차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증거신청에 관한 의견 확인과 증거 채부 결정을 꼽습니다. 증거능력 다툼이 이 자리로 모이도록 설계된 셈입니다.
준비기일을 넘기면 새 증거 신청에 문턱이 생깁니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13 제1항은 공판준비기일에서 신청하지 못한 증거를 공판기일에 신청하려면 소송을 현저히 지연시키지 않거나, 중대한 과실 없이 제출하지 못한 부득이한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배심원은 증거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에는 빠지지만 설명은 듣습니다. 제46조 제1항은 변론이 끝난 뒤 재판장이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공소사실의 요지와 적용법조, 피고인과 변호인 주장의 요지와 함께 증거능력에 관하여 설명하여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어떤 자료는 판단에 쓰면 안 되는지, 왜 그런지를 배심원이 평의에 들어가기 전에 알게 하는 장치입니다.
배심원이 판단을 맡지 않을 뿐, 결과를 모른 채 평의에 들어가는 구조는 아닙니다. 이 설명이 없거나 부족했다면 그 자체가 절차상의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배제된 증거를 배심원이 이미 들었다면
설계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증인이 묻지도 않은 내용을 꺼내거나, 공판 도중에야 위법 수집 사정이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이때 기댈 곳은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제46조 제1항의 설명으로, 재판장이 그 내용을 판단에서 빼라는 취지를 배심원에게 분명히 전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46조 제5항입니다.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한다고 정해져 있어, 최종 판결은 판사들이 증거능력 판단을 반영해 내립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배심 평결은 판결에 사실상 무게를 갖기 때문에, 문제 된 증거가 평의에 스며들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이의를 밝혀 두는 것이 우선입니다.
피고인 쪽이 놓치기 쉬운 지점은
증거에 동의하는 순간 다툴 거리가 사라집니다.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은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을 동의한 서류나 물건은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면 증거로 할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무심코 한 동의 한 번이 증거능력 다툼 전체를 닫아 버릴 수 있습니다.
- 수사기록을 열람한 뒤 서류마다 동의할지, 부동의할지 목록을 만듭니다.
- 위법 수집이나 임의성을 다툴 증거는 그 근거 사실을 따로 정리합니다.
- 공판준비기일에서 그 의견을 빠짐없이 밝히고 기록에 남깁니다.
- 공판 중 새 사정이 드러나면 즉시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장 설명을 요청합니다.
확인할 것
· 공판준비기일 조서에 증거 의견이 제대로 적혔는지
· 부동의한 서류에 대해 검사가 어떤 증인을 신청했는지
· 재판장의 최종 설명에 증거능력 관련 내용이 담겼는지
정리
제44조는 증거로 쓸 자격을 따지는 일은 판사들이, 쓸 수 있는 증거를 얼마나 믿을지는 배심원이 맡도록 역할을 나눕니다. 배심원이 듣지 말아야 할 내용을 미리 걸러 내려는 장치입니다.
싸움터는 준비기일입니다.
증거능력 다툼은 대부분 배심원이 참여하지 않는 공판준비기일에서 정리되고, 그 뒤에는 새 증거 신청과 이의가 어려워집니다. 참여재판을 선택했다면 수사기록을 받는 즉시 증거 의견 목록부터 만들고, 변호사와 함께 준비기일 전략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36조, 제37조, 제41조, 제44조, 제46조, 제49조 · 형사소송법 제266조의9, 제266조의13, 제308조의2, 제310조의2, 제318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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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배심원이 법정 밖으로 나가 있는 동안 피고인도 나가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44조는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이 증거능력 심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할 뿐, 피고인의 출석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그 자리에서 변호인과 함께 의견을 밝힐 수 있습니다.
판사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자료를 배심원이 보게 되는 일은 없습니까?
원칙적으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자료가 배심원 앞에서 조사되지 않습니다. 다만 공판 중 예기치 않게 언급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때는 곧바로 이의를 밝히고 재판장에게 배심원 설명을 요청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공판준비기일에 증거 의견을 다 내지 못했다면 끝입니까?
형사소송법 제266조의13은 소송을 현저히 지연시키지 않거나 부득이한 사유를 소명한 때에는 공판기일에도 신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만 문턱이 생기므로 준비기일에서 최대한 정리해 두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배심원 평결이 유죄여도 판사가 증거능력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수 있습니까?
제46조 제5항에 따라 평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으므로 법원은 증거능력 판단을 반영해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제49조 제2항에 따라 판결서에 그 이유를 적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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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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