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지 석 달 된 연인의 원룸 앞이었습니다. 함께 지낼 때 쓰던 비밀번호가 손에 익어 있었고, 네 자리를 누르자 도어락이 짧게 경고음을 냈습니다. 번호가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며칠 뒤 경찰에서 주거침입 미수로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문은 열리지도 않았고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왜 범죄냐는 것이 첫 반응입니다. 형법 제322조가 미수를 처벌한다고 정해 둔 이상, 따져야 할 것은 어디까지가 착수였는지, 돌아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입니다.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무슨 죄가 되나
주거침입죄는 형법 제319조 제1항에 있습니다. 사람의 주거나 관리하는 건조물,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사람은 최대 징역 3년, 벌금 500만원까지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 끝의 제322조가 이 장의 미수범을 처벌한다고 정했습니다.
제25조에 따르면 미수는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지만 끝내지 못했거나 결과가 생기지 않은 경우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수를 가르는 사정일 뿐, 처벌을 피하는 사유는 아닙니다.
형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25조 제2항은 미수범의 형을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줄여야 한다가 아니라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실행에 착수한 것인가
이 질문이 사건의 무게를 가릅니다. 착수 전이라면 예비 단계이고, 제28조는 예비를 처벌하는 규정이 따로 없으면 벌하지 않습니다. 주거침입죄에는 예비를 처벌하는 조문이 없습니다.
문 앞에 서 있기만 했거나 초인종을 눌러 사람을 부른 정도라면 아직 침입을 시작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행위는 문을 열기 위한 직접적인 동작입니다. 실무에서는 도어락 번호를 누르기 시작한 때를 실행의 착수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호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이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공동주택이라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공동현관을 지나 복도까지 들어간 행위가 그 자체로 문제 될 수 있어, 건물의 출입 통제 방식과 관리 형태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선 것과 막혀서 돌아선 것은 다른가
크게 다릅니다. 같은 미수라도 왜 멈췄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조문이 바뀝니다.
| 멈춘 이유 | 해당 조문 | 형의 처리 |
|---|---|---|
| 번호가 바뀌어 열리지 않음 | 제25조(장애미수) | 감경할 수 있음 |
| 인기척이나 경비원 때문에 포기 | 제25조(장애미수) | 감경할 수 있음 |
| 열 수 있었지만 마음을 바꿔 돌아섬 | 제26조(중지미수) | 반드시 감경 또는 면제 |
| 누르기 전에 돌아섬 | 착수 전(제28조) | 처벌 규정 없음 |
제26조는 실행에 착수한 행위를 자의로 중지한 사람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정했습니다. 장애미수와 달리 재량이 아니라 반드시 줄여야 하는 규정입니다.
도입부 사례는 번호가 바뀌어 열리지 않자 내려간 경우이니 첫째 줄에 가깝습니다.
자의로 멈췄다는 것은 어떻게 보이나
자의성은 말로만 주장해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은 그 순간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봅니다.
집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났거나, 이웃이 문을 열고 나왔거나, 도어락 경고음이 울린 직후에 돌아섰다면 외부 사정 때문에 멈춘 것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반대로 맞는 번호를 알고 있었고 아무 방해도 없었는데 몇 자리를 누르다 스스로 손을 뗐다면 중지미수를 주장할 여지가 생깁니다. 건물 CCTV에 찍힌 시간 흐름, 그 직후 보낸 메시지, 동행인의 진술이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멈춘 뒤의 행동도 함께 읽힙니다. 곧장 자리를 떠났는지, 근처에서 기다렸는지에 따라 같은 장면이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층을 착각해 남의 집 번호를 눌렀다면
전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술에 취해 한 층 아래 집 앞에서 자기 집 번호를 누른 사람입니다. 이때는 미수 이전에 고의가 문제 됩니다.
주거침입죄는 다른 사람의 주거에 들어간다는 인식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자기 집이라고 믿고 번호를 눌렀다면 침입의 고의가 없다고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만취 상태였다는 사정만으로 착각이 인정되지는 않으므로, 같은 구조의 건물인지, 집 번호가 비슷한지, 평소 귀가 동선이 어땠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목적에 따라 사건이 커질 수 있나
커질 수 있습니다. 주거침입 미수는 그 자체로는 법정형이 무겁지 않지만, 들어가려던 목적이 다른 범죄라면 수사의 초점이 옮겨 갑니다.
- 물건을 훔치려 했다면 절도, 밤이었다면 제330조의 야간주거침입절도(10년 이하 징역) 미수가 검토될 수 있습니다.
-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면 제320조의 특수주거침입(5년 이하 징역) 미수가 문제 됩니다.
- 헤어진 연인의 집을 여러 번 찾아갔다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함께 검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에서는 왜 그 집에 갔는지를 반드시 묻습니다. 이 답이 사건의 죄명을 바꿀 수 있으니 짐작으로 대답하지 말고 사실대로, 정리된 상태로 진술해야 합니다.
주의
사과하겠다며 상대방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다시 찾아가는 일은 피하십시오. 같은 상대에게 반복해 접근한 기록은 스토킹 혐의의 근거가 될 수 있고, 수사 중 접촉 자체가 불리한 정황으로 읽힙니다. 연락이 필요하다면 변호인을 통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정리
도어락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면 문이 열리지 않았어도 주거침입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고, 형법 제322조가 그 미수를 처벌합니다. 형은 장애미수면 감경할 수 있고, 스스로 그만둔 중지미수면 반드시 감경되거나 면제됩니다.
누르기 전에 돌아섰다면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결국 착수 시점, 멈춘 이유, 그 집에 간 목적이 결론을 가릅니다. 경찰 연락을 받았다면 CCTV가 지워지기 전에 시간대를 특정해 보존을 요청하고, 첫 조사 전에 변호사와 함께 진술 순서를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25조, 제26조, 제28조, 제319조, 제320조, 제322조, 제330조, 제342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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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번호를 한 자리만 눌렀어도 미수가 됩니까?
문을 열기 위한 입력을 시작했다면 착수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몇 자리를 눌렀는지,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알았는지, 왜 멈췄는지에 따라 미수 성립과 형의 감면이 달라지므로 당시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주거침입 미수도 합의하면 사건이 끝납니까?
주거침입죄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합의와 사과는 처벌 수위를 정할 때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되지만, 합의 연락은 변호인을 통해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예전에 함께 살던 집이라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요?
이미 짐을 빼고 헤어졌다면 그 집은 상대방이 혼자 점유하는 주거로 보게 됩니다.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믿은 사정이 있다면 계약 관계, 열쇠나 번호를 받은 경위, 남겨 둔 물건 등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중지미수로 인정되면 처벌을 아예 안 받을 수도 있습니까?
제26조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고 정했으므로 면제까지 가능합니다. 어느 쪽인지는 법원이 정하며, 외부 사정 없이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점을 CCTV나 메시지 같은 객관적 자료로 보여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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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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