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공판이 끝나 갈 무렵 재판장이 피고인 쪽 증인 신청을 한꺼번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기일에 변론을 마치겠다는 말까지 나오자 피고인은 법정을 나서며 이 판사에게는 더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기피신청서를 내면 예정된 기일은 정말 열리지 않는지, 괜히 판사의 심기만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가 걱정입니다. 신청이 들어간 뒤 재판이 어떤 갈림길을 지나는지 순서대로 살펴봅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야 기피를 신청할 수 있나
형사소송법 제18조가 정한 사유는 두 갈래뿐입니다.
하나는 법관이 제17조의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사건을 맡고 있는 경우입니다. 법관이 피해자이거나 피고인·피해자의 친족인 경우, 같은 사건에서 증인이나 수사 업무를 맡았던 경우, 전심 재판에 관여한 경우 등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다른 하나는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입니다.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와 피고인입니다. 변호인도 할 수 있지만 피고인이 분명히 반대하는 때에는 할 수 없습니다. 증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불공평한 재판의 염려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소송을 지휘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기피 사유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정을 먼저 추려야 합니다.
제척 · 기피 · 회피
제척은 법이 정한 사유가 있으면 당연히 직무에서 빠지는 것이고, 기피는 당사자가 신청해 법관을 빼 달라고 하는 것이며, 회피는 법관 스스로 사유가 있다고 보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신청서는 누구에게 내고, 이유는 언제까지 밝히나
제19조는 기피당하는 법관이 누구냐에 따라 접수처를 나눕니다.
| 기피 대상 | 신청서를 내는 곳 | 이유 소명 |
|---|---|---|
| 합의부의 법관 | 그 법관이 소속된 법원 | 신청한 날부터 3일 이내, 서면 |
| 단독판사 | 그 판사 본인 | 신청한 날부터 3일 이내, 서면 |
| 수명법관·수탁판사 | 그 법관 본인 | 신청한 날부터 3일 이내, 서면 |
| 법원사무관등·통역인 | 소속 법원 (제25조 준용) | 같은 방식 |
여기서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이 3일의 소명 기한입니다. 법정에서 말로 기피 의사를 밝혔더라도 그날부터 사흘 안에 사유를 적은 서면을 내지 않으면 방식을 어긴 신청이 됩니다. 소명이란 판사가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일 만큼 자료를 내는 것이므로, 공판조서 해당 부분, 기일 진행 경과, 문제 된 발언의 일시를 한데 묶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신청만 하면 다음 기일은 열리지 않나
원칙은 멈춤입니다. 제22조는 기피신청이 있으면 소송진행을 정지하여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판사가 재량으로 고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따라야 하는 규정입니다.
다만 예외가 둘 있습니다. 첫째는 아래에서 볼 간이기각의 경우이고, 둘째는 급속을 요하는 경우로서 증인이 곧 출국하거나 증거가 사라질 우려가 있는 등 기다리면 손해가 커지는 절차라면 정지 중에도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구속된 피고인이라면 한 가지를 더 계산해야 합니다. 제92조 제3항은 제22조에 따라 공판절차가 정지된 기간을 구속기간에 넣지 않는다고 정했습니다. 신청으로 재판이 멈춘 만큼 구치소에 머무는 날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니, 이 점을 따져 본 뒤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판사가 그 자리에서 기각해 버리는 경우는
제20조 제1항이 그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하거나, 제19조의 접수처나 3일 소명 규정을 어긴 경우에는 신청을 받은 법원이나 법관이 직접 결정으로 기각합니다. 기피당한 판사 본인이 기각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기각되면 재판은 멈추지 않습니다.
제23조 제1항에 따라 이 결정에도 즉시항고를 할 수 있지만, 같은 조 제2항은 간이기각에 대한 즉시항고에 재판의 집행을 정지하는 효력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항고를 내 두어도 공판은 예정대로 열리고, 그 사이 변론이 종결될 수도 있습니다. 결심 직전에 이유를 갖추지 않고 낸 신청이 가장 이런 결과를 맞기 쉽습니다.
정식 판단은 누가 내리나
간이기각 대상이 아니라면 제20조 제2항에 따라 기피당한 판사가 지체 없이 의견서를 내야 합니다. 판사가 의견서에서 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하면 그것만으로 기피 결정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판사가 인정하지 않으면 제21조에 따라 그 판사가 소속된 법원의 합의부가 결정합니다. 기피당한 판사는 이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고, 소속 법원이 합의부를 꾸릴 수 없을 때는 바로 위 상급법원이 결정합니다. 소명 자료는 이 합의부가 읽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쓰셔야 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다투나
기피신청을 기각한 결정에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고, 기간은 제405조에 따라 7일입니다. 절차는 대략 다음 순서로 흘러갑니다.
- 공판정에서 또는 서면으로 기피 의사를 밝힙니다.
- 신청일부터 3일 안에 사유를 적은 서면과 소명 자료를 제출합니다.
- 간이기각 여부가 먼저 갈리고, 해당하지 않으면 소송이 정지됩니다.
- 기피당한 판사가 의견서를 내고, 합의부가 결정합니다.
- 기각 결정을 받으면 7일 안에 즉시항고를 냅니다.
간이기각이 아닌 기각 결정에 즉시항고를 했다면 제410조의 원칙이 적용되어 그 결정의 집행이 멈추는지가 함께 문제 됩니다. 어느 쪽 기각인지에 따라 다음 기일이 열리느냐가 달라지므로 결정문의 근거 조항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같은 기각이라도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기일에 불출석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주의
기피는 재판을 늦추는 수단이 아닙니다.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는 판단을 받으면 재판은 그대로 진행되고, 남는 것은 재판부와의 불편한 관계뿐입니다. 증거 결정에 대한 불만이라면 제296조의 이의신청이 먼저 검토할 길입니다.
정리
기피신청이 들어가면 재판은 원칙적으로 멈춥니다. 그러나 지연 목적이 명백하거나 접수처·3일 소명을 지키지 않은 신청은 판사가 직접 기각할 수 있고, 그 경우에는 항고를 해도 재판이 계속됩니다.
결국 성패는 소명에 달려 있습니다. 사유를 객관적인 자료로 얼마나 단단히 뒷받침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신청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조서와 기일 경과를 먼저 정리한 뒤, 기피가 맞는 수단인지 다른 이의 절차가 나은지를 변호사와 함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사소송법 제17조, 제18조, 제19조, 제20조, 제21조, 제22조, 제23조, 제25조, 제92조, 제296조, 제405조, 제410조
13년차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부동산 전문변호사가 부산·울산·창원·대구·제주 권역에서 같은 유형 사건을 다뤄왔습니다. 사건의 갈림길에서 정확한 안내가 필요하시다면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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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법정에서 말로만 기피하겠다고 해도 신청이 됩니까?
신청 의사는 공판정에서 밝힐 수 있지만, 제19조 제2항에 따라 신청한 날부터 3일 이내에 기피 사유를 서면으로 소명해야 합니다. 이 서면이 없으면 제20조 제1항에 따라 간이기각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이 피고인 몰래 기피신청을 할 수 있습니까?
제18조 제2항은 변호인의 기피신청을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때로 한정합니다. 피고인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면 변호인 단독으로는 신청할 수 없습니다.
기피신청 중에도 구속 피고인의 재판이 진행될 수 있습니까?
제22조 단서는 급속을 요하는 경우를 예외로 둡니다. 어떤 절차가 급속을 요하는지는 법원이 판단하므로, 정지 중에 기일 통지를 받았다면 그 이유를 변호인을 통해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법원 직원이나 통역인도 기피할 수 있습니까?
제25조는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법원사무관등과 통역인에게 준용합니다. 다만 전심 관여를 이유로 한 제17조 제7호는 빠지고, 기피 재판은 그 소속 법원이 결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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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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