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내시는 여든넷 어머니의 통장을 정리하다 손이 멈췄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적금 두 개가 해지되었고, 모두 합쳐 2천만원이 같은 이웃의 계좌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매일 말벗을 하러 오던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보낸 기억조차 없는데, 이웃은 고맙다며 어머니가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속인 적은 없다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형법은 속이지 않았더라도 상대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물을 받아 내면 사기죄와 같은 무게로 처벌합니다. 준사기입니다.
속이지 않았는데 왜 사기와 같은 형인가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넘겨받는 범죄입니다. 거짓말로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준사기는 그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면 속일 필요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형법은 미성년자의 사리분별력 부족이나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사람을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사기죄의 법정형과 똑같습니다.
돈을 자기 계좌가 아니라 가족 계좌로 받게 해도 같은 형입니다. 받아 내려다 실패한 미수도 처벌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 직원이 이상하게 여겨 해지를 멈춘 경우라도 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심신장애를 이용했다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나나
치매 진단서가 있다고 곧바로 준사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일상적인 판단을 스스로 하는 분도 많습니다.
따져야 할 것은 돈이 넘어간 그 무렵의 상태, 그리고 받은 사람이 그 상태를 알고 이용했는지입니다. 수사에서는 대개 아래 사정을 함께 봅니다.
- 진료 기록에 나타난 인지 기능과 이체 시점이 얼마나 가까운지
- 금액이 평소 생활비나 씀씀이에 비해 얼마나 이례적인지
- 받은 사람이 은행에 동행했거나 비밀번호를 대신 입력했는지
- 가족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식의 말이 오갔는지
- 받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한두 가지만으로 결론이 나지는 않습니다. 여러 사정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 이용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가족이 모을 자료도 이 목록을 따라가면 됩니다. 특히 이체 날짜와 진료 날짜를 한 장의 달력에 겹쳐 적어 보면, 판단이 흐렸던 시기에 돈이 몰려 나갔는지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사기·부당이득과는 어떻게 갈리나
비슷해 보이는 세 죄는 상대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로 나뉩니다.
| 죄명 | 무엇을 이용했나 | 법정형 |
|---|---|---|
| 사기 | 거짓말로 만든 착오 | 20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 |
| 준사기 | 미성년자의 사리분별력 부족, 사람의 심신장애 | 사기와 같음 |
| 부당이득 | 곤궁하고 절박한 상태 |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
같은 사건이 어느 죄로 잡히느냐에 따라 형의 상한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웃이 병원비가 급하다는 거짓 사연을 지어냈다면 사기가, 아무 말 없이 판단이 흐린 틈을 탔다면 준사기가 검토됩니다. 어머니가 생활비에 쪼들려 헐값에 물건을 넘긴 경우라면 부당이득 쪽에 가깝습니다.
하나 더 볼 대목이 있습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사기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무겁게 처벌되는데, 그 가중 조항이 열거한 죄명 가운데 준사기라는 죄명은 빠져 있습니다. 금액이 크다고 해서 준사기가 자동으로 그 법의 적용을 받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족이 가져간 경우는 달라지나
달라집니다. 돈을 가져간 사람이 자녀나 형제처럼 피해자의 친족이라면, 준사기는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죄가 됩니다. 재산범죄의 친족 특례가 이 장의 죄에도 준용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고소할 사람입니다. 판단이 어려운 어머니가 스스로 고소하기 어렵다면 법정대리인이 독립해서 고소할 수 있습니다. 그 법정대리인이나 법정대리인의 친족이 바로 가져간 사람이라면, 피해자의 다른 친족이 독립해서 고소할 수 있습니다.
기간도 있습니다. 고소가 필요한 죄는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하지 못합니다. 친족이 아닌 공범에게는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족이 알게 되었다면 무엇부터 하나
- 은행에서 해당 기간의 거래 내역과 해지 신청서 사본을 받아 둡니다.
- 당시 다니던 병원의 진료 기록과 진단서를 발급받아 인지 상태를 확인합니다.
- 추가 이체를 막기 위해 은행에 상황을 알리고 거래 방식을 점검합니다.
- 판단 능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합니다. 배우자나 4촌 이내의 친족이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수사기관에 고소하고, 돌려받는 문제는 민사로 따로 검토합니다.
확인할 것
· 이체일마다 어머니가 어디서 누구와 있었는지
· 같은 기간 병원 방문 기록과 의사 소견
· 받은 사람과 나눈 문자나 통화 기록
· 가져간 사람이 친족인지, 친족이라면 범인을 안 날짜
의심받는 쪽이라면 무엇을 준비하나
정말로 고마움의 표시로 받은 돈이라면 그 사정을 보여 줄 자료가 필요합니다.
돈을 줄 당시 대화 내용, 가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금액이 두 사람 관계에 비추어 수긍할 만한지가 쟁점이 됩니다. 받은 사람이 스스로 은행 절차를 주도했다면 설명해야 할 부분이 커집니다. 반대로 증여의 뜻을 여러 번 분명히 밝힌 기록이 있다면 방어의 출발점이 됩니다.
돈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피해 회복은 처분과 형을 정할 때 무겁게 고려됩니다.
정리
치매로 판단이 흐려진 노인에게서 돈을 받아 냈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도 준사기가 될 수 있고, 형은 사기죄와 같습니다. 성립 여부는 진단명보다 돈이 오간 시점의 상태와 그 상태를 알고 이용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가져간 사람이 가족이라면 고소 기간을 먼저 보십시오.
진료 기록과 거래 내역을 시간순으로 맞추는 작업이 사건의 뼈대가 되므로, 고소할 쪽이든 해명할 쪽이든 자료가 흩어지기 전에 변호사와 함께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328조, 제347조, 제348조, 제349조, 제352조, 제354조 · 형사소송법 제225조, 제226조, 제230조 · 민법 제9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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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넘어간 돈도 준사기가 됩니까?
진단 시점보다 돈이 넘어간 당시의 판단 능력이 중요합니다. 진단 전이라도 진료 기록이나 주변 사람의 진술로 그 무렵 이미 판단이 흐려져 있었고 받은 사람이 이를 알았다는 점이 드러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이체하셨는데도 죄가 됩니까?
준사기는 피해자가 스스로 재물을 넘겨준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보다 그 행위가 심신장애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받은 사람이 이를 이용했는지가 기준입니다.
형제가 어머니 돈을 가져갔는데 지금 고소해도 됩니까?
친족 사이의 준사기는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고,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해야 합니다. 알게 된 날짜를 확인해 기간이 지나지 않았는지 먼저 따져 보십시오.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면 처벌받지 않습니까?
반환한다고 이미 성립한 죄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피해 회복은 기소 여부나 형을 정할 때 중요한 사정으로 고려되므로 조기에 반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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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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