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괜찮다고 했으니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기고 한 일이 뒤늦게 형사사건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의를 받았다는 말이 언제나 방패가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형법에는 승낙의 효력을 정해 둔 조문이 단 한 줄로 들어 있고, 그 짧은 한 줄 안에 통과해야 할 관문이 세 개나 숨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처벌을 면하게 되는지, 그리고 아무리 동의해도 넘지 못하는 선이 어디인지를 짚었습니다.
조문은 무엇이라고 적혀 있나
근거는 형법 제24조입니다. 제목이 피해자의 승낙이고,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는 문장입니다.
짧지만 조건이 겹겹입니다. 승낙한 사람이 처분할 수 있는 자여야 하고, 훼손된 것이 그 법익이어야 하며,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어야 합니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조문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승낙
법익의 주인이 그 침해를 허락함으로써 행위의 위법성이 사라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허락할 권한이 없는 사람의 동의나, 애초에 개인이 처분할 수 없는 법익에 대한 동의는 이 조문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처분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첫 번째 관문입니다.
그 법익의 주인이어야 합니다. 친구가 맡겨 둔 물건을 다른 친구가 부수라고 허락했다면 그 승낙은 힘이 없습니다. 허락한 사람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판단 능력도 함께 봅니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의식이 흐린 상태에서 나온 말은 승낙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속아서 한 승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과 다른 설명을 듣고 동의했다면 그 동의는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무엇에 대한 동의였는지가 늘 쟁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 법익이라는 조건
두 번째 관문은 대상의 문제입니다.
조문은 그 법익이라고 적었습니다. 승낙한 사람이 가진 이익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갈립니다. 재산은 대체로 처분이 가능한 영역에 들어갑니다. 내 물건을 부수라고 허락한 경우 손괴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그 예입니다.
반대로 국가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걸린 영역은 개인이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공무의 적정이나 공공의 신용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상대가 허락했다는 사정이 죄의 성립을 막지 못합니다.
| 구분 | 승낙의 효과 | 근거 |
|---|---|---|
| 주인이 자기 재산의 훼손을 허락 | 제24조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제24조 |
| 주인이 아닌 사람이 허락 | 처분권이 없어 효력이 없습니다 | 제24조 |
| 속아서 한 동의 | 자유로운 결정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 제24조 |
| 본인의 부탁을 받고 살해 | 별도의 죄로 처벌됩니다 | 제252조 제1항 |
|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 | 같은 형으로 처벌됩니다 | 제252조 제2항 |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세 번째 관문이 실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제24조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아 두었습니다. 입법자가 승낙이 있어도 처벌하겠다고 따로 정해 둔 조문이 있으면 그쪽이 앞선다는 뜻입니다.
가장 분명한 예가 제252조입니다. 제1항은 사람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제2항은 사람을 교사하거나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같은 형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본인이 원했다는 사정이 처벌을 막지 못합니다. 다만 그 사정이 형을 정하는 자리에서 고려되어 보통살인보다 가벼운 구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의
동의서나 각서를 받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서면이 있어도 처분권이 없는 사람의 서명이거나, 무엇에 대한 동의인지 설명이 빠져 있거나, 처음부터 개인이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조문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서면의 존재가 아니라 승낙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승낙은 언제까지 살아 있나
시점도 요건입니다.
승낙은 행위가 있기 전이나 그 시점에 있어야 합니다. 일이 벌어진 뒤에 상대가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면 그것은 제24조의 승낙이 아니라 합의나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에 가깝습니다.
두 가지는 효과가 다릅니다. 승낙은 죄의 성립 단계에서 작동합니다. 처벌불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소추를 막거나 양형에 반영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철회도 가능합니다. 승낙한 사람이 마음을 바꾼 뒤에 이루어진 행위에는 앞서의 동의가 미치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범위까지 동의가 살아 있었는지를 두고 다툼이 생기는 자리입니다.
정당행위 조문과는 어떻게 이어지나
제20조는 정당행위를 다루는 자리입니다. 법령이나 업무에 따라 한 행위, 그리고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두 조문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결론에 닿습니다. 제24조가 딛고 서는 것은 주인의 동의입니다. 제20조가 딛고 서는 것은 행위 자체의 성격입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함께 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를 받았다는 점과 그 일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 있었다는 점을 나란히 내세우는 방식입니다.
어느 쪽이 받아들여질지는 결국 사실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두 주장을 함께 내더라도 근거가 되는 사정은 따로 정리해 두셔야 합니다.
실제로 준비해 둘 것
동의를 근거로 다툴 때 정리할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승낙한 사람이 그 법익의 주인이 맞는지
- 무엇에 대한 승낙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특정되는지
- 승낙 시점이 행위보다 앞서는지
- 설명이 충분했는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섞이지 않았는지
- 해당 영역에 승낙을 무력화하는 별도 조문이 있는지
녹취나 문자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면 시점과 범위를 함께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기억에만 의존한 주장은 상대의 번복 앞에서 약합니다.
자료부터 모으십시오.
정리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으로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않도록 합니다.
관문은 셋입니다. 처분권, 그 법익, 특별한 규정의 부존재입니다.
생명처럼 개인이 포기할 수 없는 영역에는 제252조 같은 별도 조문이 놓여 있어 승낙이 있어도 처벌을 피하지 못합니다. 행위 이후의 용서는 이 조문의 승낙이 아니라 합의의 문제로 다루어집니다.
동의서 한 장을 믿고 일을 벌이지 마십시오. 무엇에 대한 동의였는지를 먼저 따져 보시고, 경계가 모호하면 미리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24조, 제20조, 제252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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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상대가 괜찮다고 해서 한 일인데도 처벌될 수 있나요?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일 것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을 것을 요구합니다. 승낙한 사람에게 처분권이 없거나 별도 처벌 조문이 있는 영역이라면 동의가 있어도 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제252조 제1항이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살해한 사람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법익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이 끝난 뒤에 받은 동의도 효력이 있습니까?
제24조가 말하는 승낙은 행위 전이나 행위 시에 있어야 합니다. 사후의 양해는 합의나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로 다루어져 양형이나 소추 요건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동의서를 받아 두면 안전한가요?
서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명한 사람이 그 법익의 주인인지, 무엇에 대한 동의인지가 특정되는지, 설명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없었는지가 함께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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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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