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정리된 서류가 얼마 뒤 다시 법정에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앞서 배척된 것을 왜 또 꺼내느냐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형사소송법에는 그 통로를 열어 둔 조문이 따로 있고, 대신 그 서류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좁게 묶어 두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 그리고 그 서류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조문 순서대로 짚었습니다.
배척된 서류가 왜 다시 나오나
통로를 여는 조문은 제318조의2 제1항입니다. 제312조부터 제31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없는 서류나 진술이라도, 법정에서 나온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해서라면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 지점을 나누어 읽으셔야 합니다. 앞부분은 대상의 범위이고, 뒷부분은 용도의 한계입니다.
범위 쪽에는 조사 단계에서 만들어진 서류들이 대부분 들어옵니다. 조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아 본증으로 쓰지 못하게 된 서류, 작성자가 성립을 부인해 힘을 잃은 진술서 같은 것들입니다. 제310조의2가 전문증거를 원칙적으로 막아 두었고 제311조부터 제316조까지가 예외의 목록인데, 그 목록을 통과하지 못한 자료가 여기로 옵니다.
버려진 것이 되살아난다기보다 쓰임새가 바뀌어 다시 들어온다고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증명력을 다투는 증거
법정 진술이 믿을 만한지를 흔들기 위해서만 쓰이는 자료입니다. 범죄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떠받치는 용도로는 쓸 수 없고, 유죄의 근거로 판결문에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증명할 수 있고 무엇은 못 하나
여기가 이 조문의 핵심입니다.
탄핵의 대상은 법정에서 나온 진술이고, 겨냥하는 것은 그 진술의 신빙성입니다. 조사 단계에서 갑이라고 했다가 법정에서 을이라고 말을 바꾼 경우, 앞의 기록을 들이밀어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흔드는 식입니다. 진술이 흔들리면 그 진술을 근거로 삼기 어려워집니다.
그렇지만 흔들린 자리가 곧바로 반대 사실로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앞의 기록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는 결론은 그 자체로 나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범죄사실을 인정하려면 증거능력을 갖춘 다른 자료가 별도로 있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판결이 예상과 다르게 읽힙니다.
| 자료가 들어오는 통로 | 근거 조문 | 할 수 있는 일 |
|---|---|---|
| 법원·법관이 만든 조서 | 제311조 |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
| 전문법칙의 예외 목록을 통과 | 제312조~제316조 | 같은 자격으로 본증이 됩니다 |
| 양쪽이 증거로 하기로 동의 | 제318조 제1항 |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면 본증이 됩니다 |
| 위 통로를 모두 통과하지 못함 | 제318조의2 제1항 |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데에만 쓰입니다 |
| 영상녹화물 | 제318조의2 제2항 | 기억을 되살리도록 재생해 보여 주는 데 그칩니다 |
누구의 진술까지 겨냥할 수 있나
조문은 대상자를 넓게 잡아 두었습니다. 피고인의 진술도, 피고인이 아닌 사람의 진술도 모두 들어갑니다. 괄호 안에는 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였거나 그 조사에 참여하였던 사람까지 포함한다는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맡았던 수사관이 증인으로 나와 한 진술도 이 통로의 대상이 됩니다.
양방향이라는 점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검사가 피고인의 법정 진술을 흔들 수 있는 것처럼, 피고인 쪽도 고소인이나 목격자의 법정 진술을 같은 방법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조사 초기의 진술과 법정 진술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그 간격 자체가 재료가 됩니다.
실제 재판에서 이 카드는 검사보다 변호인 쪽이 더 자주 씁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진술이 사건의 거의 전부인 사안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영상녹화물은 왜 따로 떼어 두었나
제2항은 제1항과 결이 다릅니다.
진술을 담은 영상녹화물은 앞의 통로를 그대로 타지 못합니다. 조문은 법정에서 진술하는 사람이 기억이 명백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그 사람에게 재생하여 시청하게 할 수 있다고만 정해 두었습니다.
즉 재판부에게 보여 주어 심증을 만드는 장면이 아니라, 진술자 본인에게 틀어 주어 기억을 환기시키는 장면입니다. 화면이 가진 힘이 워낙 커서 판단을 밀어붙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쓰임을 이렇게 좁혀 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고 있으면 법정에서 영상 재생이 요청될 때 어떤 이의를 낼지가 분명해집니다.
주의
이 통로로 들어온 자료라도 법정에서 조사하는 절차 자체는 생략되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을 어떤 진술에 견주어 다투는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서류 뭉치를 통째로 내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투려는 진술과 대응하는 기재를 짝지어 두십시오.
조서에 동의하는 순간 달라지는 것
실무에서 가장 자주 갈리는 지점이 증거 동의입니다.
제318조 제1항의 동의를 하면 그 서류는 본증이 됩니다. 탄핵의 재료로 남는 것이 아니라 범죄사실을 떠받치는 자료가 되어 버립니다. 조사에 오래 걸릴 것 같아 동의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선택이 판결문의 근거 목록을 바꿉니다.
반대로 부동의를 하면 상대는 증인을 불러 세우거나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술이 흔들리는 장면이 나오고, 그때 앞서의 기록이 탄핵 재료로 쓰입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사안마다 다릅니다. 기록을 통독한 뒤 결정할 문제입니다.
재판 전에 정리해 둘 것
준비의 순서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 조사 단계의 진술을 날짜순으로 늘어놓고 내용이 바뀐 대목에 표시를 합니다
- 바뀐 대목마다 그 무렵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함께 적어 둡니다
- 법정에서 나올 진술을 예상해 어느 문장을 겨냥할지 미리 고릅니다
- 증거의견을 낼 때 동의와 부동의를 서류별로 나누어 정합니다
- 영상녹화물이 있는 사건이면 재생 요청이 나올 자리를 예상해 둡니다
이 작업은 첫 공판이 열린 뒤에 시작하면 늦습니다. 증거의견을 내는 시점에 이미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기록 열람과 등사를 서두르셔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
제318조의2 제1항은 본증이 되지 못한 서류와 진술에 좁은 문 하나를 열어 둡니다. 그 문으로 들어온 자료는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흔들었다고 해서 그 기재가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사실은 증거능력을 갖춘 자료로 따로 세워야 합니다. 겨냥할 수 있는 상대는 피고인과 피고인이 아닌 사람 모두이고, 조사에 관여한 수사관의 법정 진술도 포함됩니다.
영상녹화물은 제2항이 따로 맡아 기억 환기용으로만 쓰이도록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증거 동의를 하는 순간 그 서류는 이 조문의 영역을 떠나 본증이 됩니다. 증거의견서를 내기 전에 기록을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 제318조, 제310조의2, 제311조, 제312조, 제313조, 제31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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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증거능력이 없다고 했는데 검사가 다시 그 조서를 꺼냈습니다. 가능한가요?
제318조의2 제1항이 그 통로를 열어 두고 있습니다. 다만 쓰임은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데에 한정되며, 그 조서의 기재가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근거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탄핵에 쓰인 자료가 판결문에 유죄의 증거로 적히나요?
적히지 않습니다. 증명력을 다투는 용도로만 들어온 자료이므로 유죄의 근거 목록에는 오르지 않고, 범죄사실은 증거능력을 갖춘 다른 자료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진술이 조사 때와 다릅니다. 제가 쓸 수 있나요?
쓸 수 있습니다. 조문은 대상을 피고인이 아닌 사람의 진술까지 포함해 두었으므로, 앞선 기록과 법정 진술의 간격을 짚어 신빙성을 다투는 방법이 열려 있습니다.
조사 과정을 찍은 영상을 법정에서 틀어 달라고 할 수 있나요?
제2항은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인정되는 때에 진술자에게 재생하여 시청하게 하는 방식만 정해 두었습니다. 재판부의 심증을 만들기 위한 재생과는 목적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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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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