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에는 행위가 범죄의 외형을 갖추었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조문들이 있습니다. 제21조의 정당방위, 제22조의 긴급피난, 제23조의 자구행위가 그것입니다. 세 조문은 모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라는 같은 문구로 끝나지만, 겨냥하는 상황은 각각 다릅니다. 실무에서 이 세 가지를 뒤섞어 주장하다가 어느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각각의 요건과 경계를 정리합니다.
정당방위 - 부당한 침해에 맞서는 것
제21조 제1항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세 요건이 있습니다. 침해가 현재일 것, 부당할 것, 그리고 방위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끝난 침해에 대한 보복은 현재성이 없어 정당방위가 아닙니다. 제2항은 방위행위가 정도를 초과한 경우, 곧 과잉방위에 관하여 정황에 따라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하고, 제3항은 그 과잉이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경악·흥분·당황 때문이었다면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실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폭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상호 폭행으로 평가되는 사안이 많기 때문입니다.
긴급피난 - 위난을 피하기 위한 것
제22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정당방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대가 부당한 침해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위난의 원인은 사람의 행위일 수도 있고 자연현상이나 동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난의 상대방은 아무 잘못이 없는 제3자인 경우가 많고, 바로 그 때문에 상당성의 심사가 더 엄격합니다. 실무에서는 보충성과 균형성이 함께 요구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어야 하고, 피하려는 법익이 침해되는 법익보다 우월하거나 적어도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제2항은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게는 제1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소방이나 구조 업무처럼 위험을 감수할 의무가 있는 지위를 염두에 둔 규정입니다.
자구행위 - 절차를 기다릴 수 없을 때
제23조 제1항은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는 청구권을 보전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현저히 곤란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요건이 매우 엄격합니다. 첫째, 보전할 청구권이 실제로 존재해야 합니다. 둘째, 법이 정한 절차, 곧 가압류나 가처분 같은 방법으로는 보전할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셋째, 그 상황이 현재 진행 중이어야 합니다. 돈을 떼일 것 같다는 이유로 채무자의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가 자구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하는 절차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2항은 정도를 초과한 경우 정황에 따라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세 조문을 가르는 질문
실무에서 어느 조문을 주장할지는 세 개의 질문으로 정해집니다. 첫째, 지금 침해가 진행 중인가. 그렇다면 정당방위입니다. 둘째, 침해는 아니지만 위험이 닥쳐 있고 피할 방법이 이것뿐인가. 그렇다면 긴급피난입니다. 셋째, 이미 침해는 끝났고 남은 것은 권리를 되찾는 문제인가. 그렇다면 자구행위의 영역이지만, 앞서 본 대로 인정 범위가 매우 좁습니다. 시간의 축으로 보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은 현재를 다루고 자구행위는 과거의 침해에서 비롯된 현재의 위험을 다룹니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주장 자체가 설득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세 조문 모두에서 마지막 관문은 상당한 이유이며, 이는 결국 수단이 목적에 비추어 적절했는가의 문제입니다.
상당성은 무엇으로 판단되나
상당성 판단에서 법원이 보는 것은 대체로 네 가지입니다. 침해나 위난의 정도, 사용한 수단의 위험성, 다른 수단의 존재 여부, 그리고 결과의 균형입니다. 맨손으로 밀치는 것과 흉기를 드는 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르게 평가됩니다. 여기에 시간 요소가 더해집니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반응인지, 자리를 뜬 뒤 다시 돌아와 한 행동인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몇 초에서 몇 분 사이의 순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폐쇄회로 영상, 통화 시각, 목격자의 진술이 그 순서를 복원합니다. 사건 직후에 확보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자료들이므로, 억울함을 설명하기 전에 자료부터 모으는 것이 순서입니다.
조사에서 이 주장을 어떻게 세우나
세 가지를 권합니다. 첫째, 먼저 사실을 정리하고 법적 평가는 그 뒤에 붙입니다. 조사에서 정당방위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그 뒤의 진술이 모두 그 결론에 맞추어 각색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했는지를 순서대로 진술하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자신의 행위를 축소하지 않습니다. 영상과 어긋나는 순간 전체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집니다. 셋째, 상대의 선행 행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합니다. 막연히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진술보다, 어떤 말과 동작이 있었는지를 시각과 함께 적는 편이 훨씬 힘이 있습니다. 이 세 조문은 인정되면 무죄로 이어지는 강한 항변이지만, 그만큼 요건이 엄격합니다. 요건에 맞지 않는 사안이라면 처음부터 양형 쪽으로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실무에서 자주 어긋나는 지점을 짚습니다. 이 세 조문은 인정되면 무죄로 이어지지만, 인정되지 않으면 사실을 다투는 데 쏟은 시간이 그대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건을 받으면 먼저 요건이 갖추어진 사안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갖추어졌다면 그 하나에 자원을 집중합니다.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경위와 피해 회복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편이 결과가 낫습니다. 양쪽을 동시에 주장하면 어느 쪽도 충분히 서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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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맞고 나서 때렸는데 정당방위가 되나요?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이어야 하고 방위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침해가 끝난 뒤의 반격이나 정도를 크게 넘는 대응은 상호 폭행이나 과잉방위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떼일 것 같아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자구행위는 법이 정한 절차로는 청구권을 보전할 수 없는 경우를 요건으로 합니다. 가압류 등 절차가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과잉이었더라도 감경받을 수 있나요?
형법 제21조 제2항과 제22조, 제23조 제2항은 정도를 초과한 경우 정황에 따라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정합니다. 야간 등 불안한 상태에서의 과잉방위는 벌하지 않는 규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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